공소시효 끝난 사건…위조범은 왜 뒤늦은 고백을 했을까

천경자 화가, 미인도

 

[포커스뉴스] 1991년 미술계를 뒤흔든 최대 스캔들이 터졌다. 바로 ‘꽃과 여인의 화가’ 故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사건이었다. 

당시 천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미인도’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 등에 작품감정을 의뢰한 끝에 ‘진품’이란 결론을 내렸다. 

당시 천 화백은 ‘미인도’를 둘러싼 위작 논란에 충격을 받고 절필을 선언했다. 천 화백에게는 ‘자신의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는 어미’라는 비판이 따라 붙었다. 

그렇게 유망한 작가를 떠나게 한 ‘미인도’ 위작 논란이 천 화백의 별세 소식과 맞물려 다시 불거지고 있다. 

◆ 공소시효 끝난 사건…위조범은 왜 뒤늦은 고백을 했을까

1991년 천 화백의 절필 선언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진품’ 선언으로 묻히는 듯했던 ‘미인도’ 위작 논란은 1999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고서화 위작 및 사기판매 사건으로 구속된 권춘식(68)씨가 검찰수사를 받으며 “화랑을 하는 친구의 요청을 받고 달력 그림 몇 개를 섞어 미인도를 만들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당시 권씨 수사를 담당한 검사 최순용 현 행복마루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최 변호사는 처음 권씨의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의아하다”였다고 한다. 

그는 “이상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가 아닌데 왜 자진해서 얘기를 하나 싶었다”면서 “궁금해서 내가 ‘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냐’고 묻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 사람 말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하더라”면서 “구속이 됐으니 모든 걸 털어놓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얘기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권씨는 왜 이미 묻힌 사건을 자수한걸까. 

최 변호사는 “죄책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미인도 사건으로 천 화백이 절필을 하게 되니 자기 나름대로 죄책감이 들었던 모양”이라며 “그렇게 까지 퍼질 줄 몰랐다면서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들려줬다”고 밝혔다. 

수사를 담당한 검사로서 최 변호사는 권씨의 말이 거짓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최 변호사는 “내가 미술감정가가 아니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 없다”면서도 “그 사람의 진술태도라든가 전후사정을 들어보면 그게 거짓말이라기에는 너무 상세하고 자세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사람이 위조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업계에서는 꽤 유명할 정도로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며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고 전했다. 

최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권씨가 주로 동양화를 그리던 인물이라 서양화인 ‘미인도’를 위작했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제기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 변호사는 당시 위작 논란이 일었던 작품에 사용된 물감이 동양화 물감이란 점 등을 들어 권씨의 말이 신빙성 있는 진술이라고 확신했다. 

◆ “검찰의 재조사? 어떻게 보면 월권일 수도”

최 변호사는 당시 조사를 마치고 고민에 빠졌다. 

‘미인도’ 위작 논란의 경우 이미 사회적인 이슈가 끝난 상태였고 법적인 공소시효도 역시 소멸한 뒤였다. 

수사과정 중에 알게 된 사실을 밝히는 것 만으로 또다른 사회적인 논란을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최 변호사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천 화백의 미인도를 임의 제출받아 검찰청으로 가져오려했다. 

그러나 상부와의 논의 끝에 ‘미인도’를 다시 미술관 측에 돌려줘야 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진상규명과 의혹 부풀리기란 이견이 존재했고 결국 관련수사를 하지 않고 해당 진술만 발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시 언론에서는 검찰이 권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해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식의 보도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최 변호사는 당시의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한 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내가 검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당시 수사검사로서 지난달 30일 이석현 국회부의장이 새정치민주연합 확대 간부회의에서 제기한 재수사 필요성은 어떻게 생각할까. 

최 변호사는 “재수사는 검찰의 월권”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검찰이 만능은 아니다. 검찰은 기본적으로 기소를 전제로 수사를 하는 것”이라며 “공소시효가 지났다면 살인범이라고 하더라도 진상규명을 목적으로 수사를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 당시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팩트를 발표했고 지금도 천 화백의 가족이나 가짜 ‘미인도’를 그렸다는 사람 모두 입을 모아 ‘미인도’를 위작이라 보고 있다”면서 “그렇다면 이제 공은 업계에 넘겨 그쪽에서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22일 천 화백의 맏딸 이혜선(70)씨가 지난 8월 6일 천 화백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미인도’ 위작 논란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씨는 지난달 27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목에 칼이 들어와도 미인도는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면서 “미인도는 위작이 확실하다”고 주장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미술계의 가장 큰 스캔들인 ‘미인도’ 위작 논란, 다시 지펴진 불이 쉽사리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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