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포커스뉴스

국내 미술계 최대 스캔들인 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이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 씨는 지난 27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목에 칼이 들어와도 미인도는 내 작품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다"면서 "미인도는 위작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천 화백의 사위인 문범강 조지타운대 미술과 교수는 미인도 위작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1991년)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증거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문 교수는 "처음 사건이 터지기 전에 국립현대미술관이 홍보 차원에서 미인도 그림을 프린트해 싼 가격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보급했다. 서울의 한 사우나에 작품이 걸려있는 것을 봤다"면서 "장모님의 작품이 사우나에 걸려있는 것을 보고 '이 집 주인이 굉장한 컬렉터인가' 하며 희한하다 생각했는데 며칠 뒤 사건이 터졌다"고 설명했다.

천 화백의 제자 중 한 명이 '미인도' 라는 그림이 프린트되어 팔리고 있다고 천 화백에게 알린 것이다. 천 화백은 프린트된 그림을 보고 그런 그림을 그린 적이 없다며 국립현대미술관에 알렸다.

천 화백은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가져온 미인도 그림을 보고 '내 그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못 돌려주겠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직원 한 명이 그림을 가져가기 위해 천 화백을 찾아왔다.

문 교수는 "미술관 직원이 서울대학교 마크가 들어간 200자 원고지에 필적을 남겼다"면서 "내용은 미인도 수장 당시에 검증을 거치지 않고 수장한 작품이라는 글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직원이 사과의 말을 전하고 국립현대미술관에 보관되어야 할 작품이라고 해서 작품을 다시 가져갔다"면서 "국립현대미술관 직원이 남긴 필적과 원고지를 내가 직접 봤고 사진 촬영도 해놨다"고 덧붙였다.

당시 감정위원회가 과학적인 검사를 통해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감정한 결과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문 교수는 "감정위원회에서 진품이라고 한 이유가 단층 촬영을 한 결과 미인도에 쓰인 물감이 장모님이 사용하는 동영화 물감과 같다는 것 때문이었다"면서 "그 물감은 장모님만 사용하는 물감도 아니었고 약간의 경제적 여유가 있는 동양학과 대학원생이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석채였다"고 주장했다.

석채는 주로 일본에서 수입하는 동양화 물감으로 색깔있는 돌을 가루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문 교수는 "미인도가 그려진 비슷한 시기 장모님의 작품을 보면 입모양, 귀 모양, 머리모양 등 미학적으로 분석해보면 하나도 맞아 떨어지는 게 없다" 면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미학적 관점에서 전혀 접근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했던 작품감정위원회 위원들이 나중에 '마지못해 수긍했다', '분위기에 휩쓸려 입을 다물고 있었다' 등 다른 말을 한 정황자료를 가지고 있다"면서 "미인도 위작 논란은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 등 거대한 집단이 한 개인을 누르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비난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에 작품 감정을 의뢰했고 진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한국화랑협회에서도 생존 작가이고 정신상태가 정상이라면 작가의 의견에 감정의 우선 순위를 둔다는 협회 내부 규정을 어기고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결론 내렸다.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감정평가가 잇따르자 천 화백은 자기 자식도 못 알아보는 어미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결국 심적 충격을 받아 절필을 선언하고 국내 화단과 인연을 끊은 계기가 됐다.
 

조승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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