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지역 만세시위, 경인지역서 가장 많은 군중이 참여 기록돼

일제강점기 강화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인천시 제공
일제강점기 강화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인천시 제공

 

1919년 3월 1일 정오를 기해 서울 종로의 파고다공원에서 손병희 선생 등 민족대표 33명이 서명한 독립선언서가 발표되고,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울려펴지면서, 3.1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강화지역 근현대사를 다룬 여러 문헌들을 종합하면 강화지역의  3.1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부터 5월 초순까지 강화읍을 비롯한 각 면, 리에서 꾸준히 전개됐다. 최초의 시위는 그해 3월 13일 강화읍 장날을 기해 전개된 것으로 기록되며, 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 학생 약 80여명이 만세시위를 벌여 주동자 5명이 체포됐다.

이어 3월 18일 강화읍 장날에는 길상면 온수리에 거주하는 기독교인들의 집단 만세시위를 벌였다. 유봉진 선생이 주동이 돼 12시를 알리는 인경소리를 시위로 장터가 떠나갈 듯한 만세소리가 울려퍼졌다. 특히 이날 만세운동은 파괴나 인명피해 없이 순조롭고 평화롭게 전개됐으며, 당시 경인지역 만세시위에서 가장 많은 군중이 참여한 것으로 기록됐다.

이에 따라 3월 19일 강화읍, 길상면 온수리, 3월 23일 교동면, 4월 1일 하점면, 양사면, 송해면 횃불시위, 4월 8일 선원면 냉정리, 양도면, 삼산면 석모리, 석포리, 4월 9일 불은면 고능리, 두운리, 양도면, 삼흥리, 4월 11일 양도면 도장리, 길정리, 5월 1일 강화읍 등 강화 전역에서 만세 시위가 이어졌다.

한편, 독립유공자 공훈록 문헌에 따르면 강화지역 3.1운동 적극 참여자는 60여명이며, 이중 50명이 일제에 체포돼 재판에 회부됐다. 훗날 국가로부터 3.1 독립운동 유공자 표창을 받은 강화지역 인물은 18명에 달하며, 항일광복운동 유공자 11명을 포함해 29명이 독립애국지사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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