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쉼터
 
 
무는 제 몸이 집이다
안방이고 변소다
저들이 울타리나 문패도 없이
흙속에 실오라기 같은 뿌리를 내리고
조금씩 조금씩 생을 늘리는 동안
그래도 뭔가 믿는 데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완성해가다가
어느 날 농부의 손에 뽑혀나갈 때
저들은 순순히 따라 나섰을까, 아니면
흙을 붙잡고 안간힘을 썼을까
무밭을 지나다가
군데군데 뽑혀나간 자리를 보면
아직 그들의 체온이 남아있는 것 같아
손을 넣어보고 싶다.


이상국 ‘무밭에서’전문
 
칠십 중반이 되도록 고향인 강원도 양양에 눌러앉아 딴 짓 한 번 하지 않고 오로지 시 쓰는 일에만 평생을 보내고 있는 이상국 시인. 그가 첫 시집을 상재했을 때 스스로 평론을 자청했던 신경림은 ‘이 시대의 가장 훌륭한 젊은 시인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라는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이상국의 시각이 남다르게 따듯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시의 생명은 따듯한 시각이다. 따듯한 시만이 독자들을 위로할 수 있고, 여러 문학 장르에서 시문학을 우선으로 치는 까닭도 사람과 사회에 대한 위로기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도 느끼듯 이상국의 시는 참으로 따듯하다. 그리고 그 온기를 우려내는 시어들이 간결하고 순박하다. 꾸밈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깊은 맛이 있고 울림이 있기에 누구나 쉽게 공감한다. 그것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 시인의 자산일이다. (장인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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