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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천에는 문학이 없다?장인성/강화신문 객원 논설위원
강화신문 | 승인2019.10.29 17:20

장인성/객원 논설위원




인천에는 문학이 없다?

두어해 전, 강화군에서 양도면 건평항 조각공원에 천상병 시인의 동상과 함께 그의 대표작인 「귀천」시비를 세워놓았다. 이름 하여 ‘천상병 귀천공원’인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애송시의 탄생지임을 알려 관광명소로 만들자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멀리 외지에서 이곳을 찾아온 문학인들은 거의가 떨떠름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강화에 거주하면서 귀천공원 건립의 산파역을 맡았던 장인성 시인에 의하면 「귀천」이라는 시의 무게에 비해 공원시설이 너무 초라할 뿐 아니라 사후관리마저 허술하다는 지적이 많다는 것이다. 더불어 귀천공원을 제대로 다듬어놓아도 강화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도시로서의 이미지제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있다.

유명한 문화예술인들의 향기나 발자취를 찾아다니는 감성여행자가 늘어나면서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그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인을 자산으로 하는 문화예술관광산업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 결과 한국문학관협회에 등록되어있는 이런저런 문학관만도 전국에 85개소나 된다. 그 가운데 연평균 10만~40만 명이나 되는 방문객을 유치함으로써 소위 성공한 문학관으로 평가받는 곳이 20여 개소에 이르다보니 광역자치단체마다 6~7개 정도의 문학관을 갖춰놓고 서로가 문화예술의 고장임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천지역에는 몇 개의 문학관이 있을까. 한국문학관협회에 문의해보았더니 한국근대문학관(인천시 중구)과 강화문학관(강화군) 두 곳만 알고 있고, 그나마 협회에 등록이 되어있지 않아 종합안내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대답이다. 그중 근대문학관은 인천개항과 함께 밀려든 신문물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한국근대문학이 주된 테마이다 보니 정작 인천지역의 독창적인 문학은 접할 수가 없다. 또한 강화출신 여류수필가 조경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강화문학관은 이 고장에서 태어났거나 인연이 깊었던 이규보李奎報를 비롯하여 권필權韠 정철鄭澈 정인보鄭寅普 같은 거인들의 문학과 사상 등을 소개하는 전시공간도 마련해놓고는 있다. 그러나 전시된 내용물이 참으로 협소하고 단편적이어서 문학관이라 하기에도 민망스러운 형편이다.

인천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계 인사를 비롯하여 그 분야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이 “인천에 문학동은 있어도 문학은 없다.”라고 자조하는 까닭도 이 고장의 역사적 향기 또는 전통적 정서 등을 음미할 수 있는 향토문학이 외면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민들이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문인으로 우러름을 받고 있는 이규보선생의 문학적 업적마저 홀대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을 남긴 이규보 선생은 문장실력이 중국 당나라의 이태백과 비견될 만큼 출중하여 ‘주필이당백走筆李唐白’으로도 불린 대문장이다. 당시 사대사상이 극심하여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도 오직 중국을 섬기는 것이라야 했던 시절을 살다간 선생이 28세의 젊은 나이로 지은 「동명왕편」은 우리가 결코 중국에 뒤지지 않는 우월한 민족임을 주창한 민족대서사시다. 이로 하여 땅에 떨어졌던 민족자존을 일으켜 세웠기에 단재 신채호 같은 꼿꼿한 민족주의자가 “이규보야 말로 국풍문학國風文學의 태두”라고 찬양했던 것이지만, 선생의 학문정신인 ‘문장지화국文章之華國’ 즉 ‘나의 글로 나라를 빛내겠다.’는 애국심의 결과물이지 않겠는가. 

아시다시피 이규보 선생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받아 강화로 천도한 1232년 7월부터 1241년 9월 타계할 때까지 9년여를 강화도에서 살다 강화 땅에 잠들어 있는 영원한 강화인이다. 선생의 문집 『동국이상국집』에 전해지는 글 가운데 절반가량이 강화에서 쓴 작품들이고, 그중 몽골황제를 회유하여 강화정벌을 막은 「진정표陳情表」. 역시 대장경판 복원의 정당성을 알려 전란에 휩싸인 나라의 힘을 결집시키고 대몽항쟁의 결의를 확고하게 다진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 그리고 우리민족이 세계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 인쇄에 사용했음을 밝혀준 「상정고금예문발문祥定古今禮文跋文」 등은 역사적으로 매우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규보 선생은 생전에 지은 시편이 무려 8천여 수에 이르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만도 2,800여 수로써 이는 세계문학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방대한 분량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이름난 문장가 590인의 작품을 수록한 『동문선東文選』에도 선생의 작품이 가장 많이 실려 있다. 100편 이상의 작품이 수록된 명사들만 골라 비교할 때 최치원崔致遠 189편. 김부식金富軾 103편. 이인로李仁老 113편. 이제현李齊賢 136편. 이색李穡 289편. 김종직金宗直 104편에 비해 이규보의 작품은 무려 428편이나 된다. 조선선비의 표상인 서거정이 “동방에 시성이 있다면 오직 이규보 뿐”이라고 찬양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강화지역사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규보 선생의 위대한 문학적 업적을 선양할 수 있는 문학관 건립 등의 기념사업을 추진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세계 제일의 문장가가 마지막을 살았고 영원히 잠들어있는 고장임을 널리 알려 강화야 말로 진정한 문화도시라는 자긍심을 공유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기념사업은커녕 흔하디흔한 시비詩碑조차 선생의 것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이규보 뿐이랴. 조선시대의 독보적인 필력으로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권필 정철 정인보 등도 그들의 연고지인 강화에서는 무명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러한데 어찌 ‘인천에는 문학이 없다’는 오명을 벗을 수 있겠는가.

서구사회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이웃인 중국의 예만 들더라도 사후 1,000년도 넘은 이백. 두보. 백낙천 같은 유명문인들의 기념공간을 엄청난 규모로 마련해 놓고 그들의 문학적 업적을 세계인들에게 자랑하며 중국문화의 자존심으로 삼고 있다. 우리 인천에서도 이러한 외국의 사례를 참고하여 이규보 선생을 비롯한 유명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선양사업 또는 기념사업을 착실히 준비한다면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문화예술도시로 변모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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