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미국 39대 대통령을 역임한 지미 카터는 청년시절 군인이었다.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장교 선발 면접에서 “졸업 성적이 몇 등이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카터는 “820명 중 59등”이라고 우쭐대며 말했다. 그러자 해군 제독이 “그게 최선이었나”라고 반문했다. 카터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말을 인생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 경험이 카터의 인생관을 바꿔놓은 것이다. 카터가 자서전의 제목을 ‘Why not the best’라고 적은 까닭이다.

아이작 뉴턴도 청춘의 절망을 딛고 인류 문명을 바꿨다. 뉴턴이 스물세 살 때인 1666년, 영국에 페스트가 덮쳤다. 당시 런던 인구 46만 명 중 7만5000명이 희생됐다. 뉴턴에게 그 절망의 시기는 ‘아누스 미라빌리스(Annus Mirabilis)’였다. 라틴어인 아누스 미라빌리스는 평생의 성취가 집중된 ‘기적의 해’를 의미한다.

대학이 페스트로 문을 닫자 뉴턴은 낙향했다. 시골에서 생각의 힘을 키웠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깨달았다. 백색 광선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무지개 색으로 분해되는 빛의 신비와 수학의 새 지평을 개척한 미적분을 창안했다. 절망의 시기에 3대 발견의 기초를 다졌다. 뉴턴의 청춘은 새로운 도전의 기회였던 것이다.

청춘의 도전은 의지다. 겁 없는 도전은 인고(忍苦)를 수반한다. 윈스턴 처칠은 “절대 포기하지 말라. 절대로 단념하지 말라. 결코,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그 어떤 것에도 지지 말라. 무엇에도 굴복하지 말라. 힘에 굴복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렇다. 실패에 굴복하지 않고 마음을 다잡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청춘의 특권이다.

말이 쉽지 실행은 어렵다. 노력해도 헤매기 십상이다. 헤매다보면 앞이 캄캄하지만 한편으론 길도 보인다. 실패학의 중요성이다. 실패에서 배우면 미래가 달라진다. 미래는 이름이 다양하다. 약한 자들에게는 불가능이고, 겁 많은 자들에게는 미지이고, 용기 있는 자들에게는 기회다. 청춘들이 꼭 새겨야 할 말이다.

우리 강화군의 미래도 청소년들의 미래에 달렸다. 전체 7만 명도 안 되는 인구 중 19세 미만은 7,385명(올 4월 기준)으로 11%에 불과하다. 80~89세 어르신 7,351명보다 겨우 34명 많다. 이들 7,385명이 강화군의 미래다. 고향에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도전해야 한다. 서울보다 교육·경제·문화 환경이 좋지는 않다. 그렇지만 강화에는 생각의 근육을 키워줄 천혜의 자연과 따뜻한 마음이 있다. 현재의 상황을 미래의 기회로 만드는 긍정 마인드가 중요하다. 거기서 역동적인 생각의 근육이 자라고 인생의 밑거름이 쌓인다.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화가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구상하는데 15년을 매달렸다. ‘가지 않은 길’로 유명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작품 중 92%를 마흔을 넘긴 나이에 쏟아냈다. 청춘의 경험과 고뇌, 도전과 실패를 삶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청춘은 강건하다. 결코 굽혀서는 안 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청춘이 파괴될 수는 있어도 퇴폐할 수는 없다(A young can be destroyed but not be defeated)”라고 말했다. 청춘은 후퇴하는 법이 없다. 오직 전진할 뿐이다. 인생은 현재의 연속이다. 현재를 즐기고 현재에 열정을 쏟는 삶이 미래를 연다. 강화군 청소년들도 지금 인생 여정의 밑거름을 쌓고 있다. 현재보다 더 중요한 미래는 없다.

저작권자 © 강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