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연 강화여고 사서교사

 

10대를 추억앨범에 담아두는 2월이 되었습니다. 특히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우리 아이들에겐 학창 시절에 대한 기억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출발점에 도달한 거지요. 만 18세 이상이 되면 성인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성인’으로 자신을 디자인해나가는 시작점은 고등학교 졸업식 이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나요? 개인차가 있겠지만, 저는 독한 다짐을 하며 대한민국 고등학생으로서의 삶을 어서 끝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난 이건 절대 공부하지 않을 거야.’ 혹은 ‘반드시 이건 해봐야지!’ 이런 종류의 각오를 생각하며 그 시절을 견뎌낸 것 같아요. 그리고 좋은 기억이든 그 반대이든 다시는 고등학생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가득했어요. 그리고 맞이한 20대. 이젠 어쩌면 더욱 혹독한 취업의 전쟁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들 합니다. 대학교를 거쳐서든 바로 취업을 하든 말이죠. 그러나 분명한 건 절대 그렇게 가혹하기만 한 20대는 아닙니다. 오히려 정말 내가 공부해보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길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진지한 고민을 하며 성장하는 시기가 바로 20대라고 생각해요.

저는 스무 살에 친한 친구와 무박 2일의 기차여행을 했습니다. 밤늦게 완행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서 새벽부터 밤까지 놀다가 다시 밤 기차로 돌아왔죠. 고등학교 시절에 느낀 건 정말 새발의 피구나 싶을 정도로 삶의 현장에서 겪는 실질적인 고민(생계, 취업, 학업 등)이 마치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느낌으로 분명하게 다가오던 시절이었지만, 그렇게 친구와 함께한 여행은 여전히 마음에 남아서 스무 살의 기운을 저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때 함께한 친구 역시 저와 같은 사서교사로서 여전히 서로를 응원하며 소통하고 있고요.

여러분의 20대는 세 가지를 중심으로 디자인해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건강, 일, 사랑’ 이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각각 한 문장의 ‘삶의 선언문’을 작성해보세요.

먼저 ‘건강’입니다. 저는 40대를 앞두고 디스크 탈출증 초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20대부터 건강관리를 하지 않고 살아온 결과가 30대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던 거죠. 그리고 그때부터 남은 삶을 ‘병’으로 허비하지 않도록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50분 걷기와 같이 진짜 제가 할 수 있는 운동을 말이죠. 그래서 여러분도 그동안 앉아서 공부하느라 무질서해진 건강을 제대로 챙길 수 있도록 목표를 세워보세요. “나는 건강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매일 50분 걷기를 실천합니다.” 라고 말이죠.

다음은 ‘일’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대학교를 다니든 그렇지 않든 목표는 동일할 겁니다. 취업을 위해서겠죠. 그렇다면 자신만의 전문성을 쌓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될 겁니다. 언제까지나 ‘생각 없이’ 살아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동안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다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여러분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며 ‘꿈의 여정’을 그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주변에서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칭찬을 했었는지. 그걸 생각하다보면 역으로 내 일을 찾아볼 수 있답니다. 저는 사실 지금의 여러분들처럼 학창시절부터 진로고민을 많이 하면서 살진 않았습니다. 그저 공부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고, 막연하게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죠. 그런데 꿈의 여정을 되짚어보니 아버지께서 저의 강점을 일깨워주셨고, 그간 제가 경험한 것들이 바로 ‘문헌정보교육’ 즉 사서교사를 향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그렇게 20대부터 진짜 내 꿈을 찾고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지요. 그리고 지금은 당당하게 ‘나는 대한민국의 사서교사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여러분도 그 분야에서만큼은 내 이름 석자를 당당히 말할 수 있게 하겠다는 각오로 자기계발과 전문성 기르기에 매진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물론 지식과 지혜를 함께 쌓아가며 전문성을 키워야 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이것 역시 문장으로 표현해보세요. 가령 “나는 OO분야에서 OOO이란 이름을 먼저 떠올리도록 어학공부를 매일 5분씩 하고, OO분야의 시사 이슈 체크를 하며 내 생각을 정리해나갈 것이며, OO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준비합니다.” 라고 말이죠. ‘일’과 관련된 선언문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를 써도 좋습니다. 막연한 것보단 구체적인 선언이 효과적이거든요.

마지막으로 ‘사랑’입니다. 수전 베르데는 「나는 ( ) 사람이에요」라는 책에서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에요. 친구와 가족과 세상과 연결되어 있어요. 우리는 모두 사람이에요.’라고 말하고 있어요. 제가 말하고 싶은 ‘사랑’은 남녀만의 사랑이 아닙니다. 바로 ‘관계 맺고 살아가는 모든 존재와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저와 도서관에서 수업을 함께 한 학생들이라면 기억할지 모르겠네요. 저는 매년 ‘관계 맺기’와 관련된 독서 및 인문학 체험활동을 합니다. ‘너와 내가 만든 우리’라는 표현도 참 좋아하지요. 여러분도 이미 느꼈듯 인생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순 없습니다. 형태는 다르지만, 나와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 함께 사는 가족들, 룸메이트, 직장 상사나 동료, 제자 그리고 길을 가다 마주치는 타인들 게다가 우리 주변에서 늘 존재하는 동식물과 자연, 이 모든 것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느냐가 한 사람의 ‘삶의 가치관’을 완성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관계에서의 가장 큰 덕목이 바로 ‘사랑’이구요. 물론 우리는 마더 테레사도 아니고 예수나 석가도 아니지요. 그래서 이 모든 존재와 사랑을 온전히 실천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삶에서 꼭 이루고 싶은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다짐은 해보세요. 가령 “나는 가장 사랑하는 가족과 주 3회 이상은 꼭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대화를 나누고, 직장에서 만나는 사랑스런 제자들을 위해 유의미한 독서프로그램을 연구하고, 함께 사는 강아지를 위해 매일 짧은 시간이라도 놀아주며, 책으로 연결된 모든 사람들과 소통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라고 말이죠.

이렇게 여러분의 삶을 위한 선언문을 작성하고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누군가를 위한 삶이 먼저라기보다 여러분의 온전한 삶을 살아냄으로써 자연스럽게 타인들에게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해 줄 수 있기에 결국은 누군가를 위한 삶도 실현이 되는 거거든요.

얼마 전 제가 근무하는 강화여고에서도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매년 만나는 17살~19살의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는 더이상 같은 공간에서 함께할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진짜 삶의 현장으로 당차게 걸어 나갈 모습을 응원하고 축복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가득합니다. 분명 여러분은 지난 과거가 어떤 형태였든지, 삶의 선언문을 작성하며 당당하게 출발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찬란한 20대를 디자인하며 추억의 10대를 앨범 속에 잘 담아두고 가끔 꺼내어 이야기해볼 수 있는 기억으로 정리해두는 2월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찬란한 20대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강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