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심어린 제안과 지적,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것 옳지 않다.

안철수 국회의원(새정치민주연합)

혁신의 본질에 대하여

저는 9월 2일에 <낡은 진보 청산>, <당 부패척결>, <새로운 인재영입>의 세 가지를 당 혁신의 큰 방향으로 말씀드렸습니다. 혁신의 성공 여부는 정치인이나 혁신위원회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국민이 당이 변했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당의 혁신은 실패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혁신 방향 제안과 공론화 요구를 한 것입니다.

제가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이대로 간다면 공멸할 것이라는 위기감과 절박감 때문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내년 총선뿐만 아니라 2017년 정권교체도 어려울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충심어린 제안과 지적에 대해서, ‘가만히 있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당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국민의 시각에서 평가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혁신에 대해 논쟁 하자는 것이지 계파싸움이나 주류-비주류 대결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안철수의 인식이고 시각이며 문제제기입니다.

문 대표와 혁신위원회는 저를 보지 마시고 국민을 보십시오. 당 내에 갇힌 좁은 시야가 아니라, 당 밖의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주십시오. 제게 설명하기보다 국민을 설득해주시고 국민께 평가를 받으십시오. 혁신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공감을 얻을 때만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당의 혁신에 대한 기본적이며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할 때입니다. 누구를 위한 혁신인가? 무엇을 위한 혁신인가? 혁신의 범위는 무엇인가? 제도개선인가 체질개선인가? 등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첫째, 누구를 위한 혁신입니까?

단순하지만 중요한 질문입니다. 혁신의 눈높이에 대한 질문입니다. 최소한 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눈높이라도 지켜야 합니다.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국민의 관점이라면 국민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합니다.

국민의 눈으로 당의 병폐를 도려내야 합니다. 혁신안이 실행되었을 때 당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 그리고확신과 믿음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형식만 바뀔 뿐 결과의 차이가 없거나 미미하다면 혁신은 기득권 유지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지금까지 혁신 노력에 대한 평가는 국민께 물어보아야 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합니다.

둘째, 무엇을 위한 혁신입니까?

야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야당보다 익숙한 실망감을 주는 여당을 찍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야당의 문제는, 국가경영을 맡길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당의 혁신의 목표는 국가경영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혁신의 목표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 당을 수권정당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목표로 할 수도 있고, 당의 분열이 심각하니까 당이 단합하고 분열을 막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무총장제 폐지, 최고위원회 해체 등 갈등의 표출을 막거나 대체하는 제도개선안이 나온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혁신의 목표가 갈등의 해소만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만을 위해 다섯달을 기다려온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국가경영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정당으로 변화했느냐 하는 관점에서 혁신의 목표를 세우고 성과를 평가해야 합니다.

셋째, 혁신의 범위는 무엇입니까?

혁신의 목표가 국가경영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정당으로의 변화라면, 혁신의 범위는 광범위한 정당개혁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향은 <낡은 진보 청산>, <당 부패척결>, <새로운 인재영입>에 맞추어야 합니다. 공천개혁은 그 중 일부분일 뿐입니다.

또한 정당개혁은 우리 당 스스로 선도적이고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개혁이지만, 좀 더 범위가 넓은 정치개혁은 여당과 국회에서 합의를 통해야만 실행에 옮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혁신위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원래 맡은 정당개혁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 제도개선인가 체질개선인가?

제도개선만으로는 근본적인 혁신이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대개조 이야기도 나오고 국민안전처 등 정부조직을 개편했지만 대한민국의 실질적 변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 당의 많은 이들이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그렇게 지적 해왔습니다.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잣대와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는 잣대는 같아야 합니다. 제도만으로는본질을 바꿀 수 없습니다. 만약 제도개선이 답이라면 제도개선을 통해서 당이 바뀔 것이라는 당내외 공감대와 믿음이 중요한데 과연 지금 그것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제도개선 노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도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자 문화며 관행입니다. 따라서 당 혁신의 본질은 제도개선이 아니라 낡은 인식, 행태, 문화와 같은 체질을 개혁하는 것입니다. 낡은 체질을 그대로 유지하는 제도개선은 혁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 패배, 지난해 7.30과 올해 4.29 재보궐선거의 연속 패배, 그리고 지금의 낮은 정당지지율은 당이 국민으로부터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사회경제적 환경과 유권자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상태에서 우리 당이 낡은 체질과 고정관념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10년의 집권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정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시대에 뒤쳐진 노쇠한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 당에 대해 새누리당에 대비되는 또 다른 기득권세력의 한 축으로 평가하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정치 불신의 탓이 크지만, 정치 불신에 대한 우리 당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습니다.

그 동안 당 내부의 부조리와 윤리의식 고갈, 폐쇄적 문화, 패권주의 리더십이 당을 지배해 왔습니다. 순혈주의와 배타주의, 진영논리로 당의 민주성, 개방성, 확장성을 가로 막으며 기득권을 공고히 해왔습니다. 그 결과, 정치에서 양비론을 자초하고, 대북문제와 안보 그리고 경제문제에서 기득권 보수 세력들에게 끌려 다녔습니다. 도덕적 우위도 점하지 못했습니다.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클린 정치를 주도하지 못하는 야당이 과연 경쟁력이 있겠습니까?

이러한 뒤떨어진 인식과 사고, 병폐들을 걸러내는 것이 당 혁신의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당의 타성과 체질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권교체를 이루려면 혁신의 목표를 체질개혁에 두고, 민심에서 멀어져 있는 당의 정신과 골격을 새로 짜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뿐만 아니라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당의 판단과 결정은 국민의 보편적 정서와 맞아야 하며 자정기능이 작동될 수 있어야 합니다. 원칙론적인 제도개선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 판단과 행동을 보여주어야,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고 당의 낡은 체질을 바꾸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당 위기의 본질은 한마디로 변화된 환경과 낡은 시스템의 충돌입니다. 낡은 진보의 청산이나 당 부패 척결 문제는 시대적 흐름과 요구인데도 불구하고 그 동안의 당내 타성과 기득권에 막혀 금기시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공론화하는 것이 당 혁신의 첫걸음이고, 과감하게 청산하고 결별하는 것이 육참골단 혁신입니다. 육참골단이 정풍운동이고 야당바로세우기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위기이고 엄중합니다. 고령화, 저성장, 양극화 속에 경제사회적 기득권 구조는 더욱 공고해지고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절망에 빠져 있고 어르신들의 삶은 참담합니다. 이런 모순구조가 계속되면 과연 대한민국이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지 우려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래도 희망도 없는 대한민국, 정치가 나서서 바로 잡아야 합니다.

한국사회 최대의 문제는 부실한 정치입니다.

그 바탕에는 허약하고 무능력한 정당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당이 혁신되어야 정치가 혁신됩니다.

우리 당부터 혁신해야 합니다.

혁신된 야당만이 정치를 바꾸고 국민의 삶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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