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성(객원논설위원, 시인)

장인성(객원논설위원, 시인)
우리 강화도의 주산인 마니산을 일러 ‘민족의 성산聖山’이라고들 한다. 산을 우러름의 대상으로 여겼던 삼한 쩍부터 마니산을 ‘두악頭岳’ 또는 ‘머리산’이라 부르며, 수많은 산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대접했다. 

한반도 전체에서 상서로운 땅기운을 가장 강하게 내뿜는 산이라는 뜻이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강화지방의 독특한 어법에 의해 머리산이 ‘마리산’으로, 다시 ‘마니산’으로 변질되었음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각설하고 해발 1천m 이상 되는 고산준령이 첩첩한 한반도에서 472m에 불과한 마니산이 백두산과 더불어 성산으로 우러름을 받는 까닭은 거기에 ‘참성단’이라는 신단神壇이 있기 때문이다.

『고려사』 혹은 『신동국여지승람』 등 고대사에 기록되기를 ‘단군 왕검께서 재위 51년 장정 8천명을 동원하여 정족산에는 삼랑성을, 마니산에는 참성단을 쌓게 하고 3년 뒤인 단기 54년 몸소 단에 올라 하늘에 제를 올렸다.’라고 했으며, 고구려 유리왕도 재위 19년 되던 해에 참성단에서 천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고려를 지나 조선말에 이르기까지 여러 왕들이 단을 중수하거나 보수했다는 것은 참성단의 천제행사가 5천년 민족사와 함께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는 이야기다. 오늘까지도 개천대제나 성화채화의식이 행해지는 것을 보면 마니산 참성단이 단군유적을 떠나 우리민족의 뿌리로서 얼마나 성스럽게 여기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단군이 참성단을 쌓고 처음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느릅나무와 버드나무 가지를 베어다 서로 마찰을 일으켜 불을 밝혔다고 한다. 이 땅을 처음으로 밝힌 불씨인 셈인데 여기에도 음양의 조화가 기막히다. 즉 끈적끈적한 진액을 발산하는 느릅나무는 남성을 의미하고, 가냘프게 휘감기는 버드나무는 여성을 의미하는데 이것들을 서로 비벼서 불을 일으켰다니 해학민족이 아니고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대단한 명품스토리인 것이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해마다 봄이 되면 관리를 마니산으로 보내 한창 물이 오른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로 불씨를 지피게 하여 왕이 직접 고을 수령들에게 나누어주며 ‘이 땅을 처음으로 밝혔던 태초의 불씨를 내리니 만백성으로 하여금 이 하나의 불씨를 사용하게 하여 마음까지 하나 되게 하라’고 명했다고 한다. 조선후기에 간행된 『동국세시기』에도 ‘봄이 되면 내병조內兵曹에서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로 마찰을 일으켜 새 불씨를 받아 사직단에 보관해 두었다가 한식을 전후로 전국 삼백육십 고을 수령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라고 했으니 이 사화(賜火)행사는 일제침탈 직전까지 반만년을 이어져 왔고, 한식날에는 전에 쓰던 불씨를 모두 꺼트렸으므로 차가운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겨난 것이다.

지금도 마니산 참성단에서는 해마다 전국체전을 밝히는 성화의 불씨를 지피는 채화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비록 태양열을 이용하고 있지만 한민족을 한마음 한 뜻으로 결집시켜주는 화합의 불씨이기를 바라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고, 그것이 태초의 불씨를 영원히 밝히고 있는 마니산 참성단의 소망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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