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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政色에 멍드는 민주주의장 인 성(시인. 스토리텔러)
편집부 | 승인2019.07.06 01:29



내가 국회에서 교육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 알고 지내던 교직자 한분이 늘그막에 강화도로 이주를 해왔다며 집들이에 초대를 해줬다. 새로 집을 지어 들어 온지 달포밖에 되질 않았다면서 어떻게 수소문을 했는지 주인과 함께 교단에 몸담고 있다가 강화로 들어와 사는 전직들이 예닐곱이나 모여 있었다. 그들과 수인사를 나눈 뒤 집주인에게 이사 온 것을 환영한다고 덕담을 건네자 교감출신이라는 사람이 내 말을 가로막으며 하는 말이 이랬다.

“저 친구 잘 못 들어온 거예요. 나는 이곳에 정나미가 떨어져서 다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그런 기피지역으로 이사 온 것이 무슨 잘 한 일이라고 환영을 하고 축하를 한답니까?”

강화도가 기피지역이라니? 이런 몹쓸 인사가 있나 싶어 그렇게 말하는 까닭을 따져 물었더니 대답이 또 가관이다.

“어떻게 국정을 농단하다 망한 OO당 사람을 군수로 뽑는단 말입니까? 그 당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들이에요. 국정농단 DNA가 흐른단 말입니다. 그러니 군수도 군정을 농단하고 있잖아요. 그런 사람을 뽑은 군민들이 어리석지만, 오죽해야 현 군수에게는 사업예산을 주지 말라고 군 의회 사무실에서 농성하는 일이 벌어졌겠어요.”

듣자하니 이 사람은 사리분별도 없이 자기가 싫으면 무조건 증오하고 혐오하는 맹목적인 사람인 듯싶었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와 정치적 색깔이 다른 인사를 행정수장으로 선출한 다수의 군민들까지 거침없이 비난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군에서 하는 일은 모두가 마뜩치 않다며 비난을 퍼붓고, 더욱이 민의의 위임집단인 의회에서 결정하는 일까지 강압하는 행위를 정당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아 민주주의의 정신이나 원리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시다시피 민주주의는 ‘대중 또는 민중이 지배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소수의 권력자가 지배하는 체제가 아니라 선거 또는 여론을 통해 국민 모두가 참여하고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예를 들어 군에서 무슨 일을 하려면 군 의회의 심의를 받는다. 그리고 강화군 의회는 그 교감출신이 좋아하고 지지한다는 정당 인사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할진대 군에서 하는 일이 모두가 비난을 받을 사안이라면 이 고장의 의회의원들이 행정기관의 꼭두각시이거나 허수아비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모순치고는 절정의 모순으로서 강화군민 모두를 모독하는 것이고, 풀뿌리민주주의까지 부정하는 못난 짓이다.

물론 다수의 민의에 의해 선출된 인사라고 해서 모두가 좋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인격자라 해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공자(孔子) 같은 성현도 어느 마을을 찾아갈 때 제자인 자공(子貢)이 “이 마을 사람 모두가 스승님을 존경하여 가르침을 따른다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공자가 “그것은 옳지 않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자공이 “그렇다면 마을사람 모두가 스승님을 미워한다면 그것은 어떻습니까?”라고 다시 묻자 공자가 “그것도 옳지 않다. 착한 사람으로부터는 사랑을 받고, 악한 사람으로부터는 미움을 받느니만 못하니라.” 라고 했던 것이다.

 

서양속담에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은 애꾸눈이고, 미워하고 증오하는 감정은 완전한 장님’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미워하는 것이 오히려 어렵다는 뜻이리라. 심리학자들의 이야기로도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감정은 참으로 다스리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남을 미워하는 증오심은 인간을 맹목적이게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총리였던 조루즈 클레망소일 것이다. 그는 독일에 대한 증오심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임종을 앞두고도 이렇게 외쳤다.

“내가 죽으면 시체를 독일을 향해서 세운 채로 묻어 달라. 죽은 뒤에도 독일의 멸망을 지켜볼 수 있도록!”

자신의 시신을 세운채로 묻어달라는 클레망소나 특정인사가 보기 싫어 강화도를 떠나겠다는 사람처럼 맹목적인 증오는 자신의 정신건강을 피폐하게 할 뿐이다. 그리고 말이란 한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이지만 듣는 귀는 수 천 수만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누구를 원망하거나 비난하는 말은 비수처럼 날카로워서 상대를 해치거나 아니면 스스로를 반드시 해치고 만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마음을 혓바닥 위에 얹어놓고,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혓바닥을 마음속에 숨겨둔다.’고 하지 않던가.

 

진실로 충고하건대 남을 헐뜯기에 능한 사람은 부디 그 혀를 그대의 마음속에 숨겨라. 그리고 남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습관을 길러라. 사랑하고 신뢰하는 상대가 많을수록 행복지수가 높아진다고 하지 않던가.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많은 이들로부터 내가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신뢰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나또한 많은 이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행정기관에 대한 헐뜯음 문화는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농어촌 지역일수록 심한 모양이다. 인구도 적고 생산 활동에도 한계가 있는 농어촌지역은 도시에 비해 경제적 자립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자연히 행정지원에 대한 욕구가 강할 수밖에 없고, 그 지원이 우리 마을 또는 나에게 우선되지 않으면 원성이 봇물처럼 터지기 때문이다.

우리 강화지역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예를 들어 군에서 마을사업을 한다고 치자. 물론 의회의 심의를 거쳐 예산과 규모 또는 우선순위를 정할 것이지만 그 순서가 밀리거나 다른 마을에 비해 미흡하다싶으면 행정기관과 의회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목격되고 있다.

 

나와 교분을 나누던 어느 인사가 인구 3만에 지나지 않는 강원도 농촌지역의 군수로 일할 때, 내가 ‘주민이 적어서 일하기는 편하겠다.’고 하자 그 친구가 정색을 하며 하던 말이 떠오른다.

“어이구, 말도 마쇼. 내가 궁둥이만 들썩해도 시비가 붙어요.”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움직일 때마다 정치색이 다른 사람들이 시비를 하거든. 무슨 지역사업을 잘했느니 못했느니 시비를 하는 것은 예사이고 심지어 다음 선거를 위한 선심행정이라고 모함을 하는 통에 눈만 뜨면 해명하고 설득하러 다니느라 파김치가 되는 날이 허다합니다. 그리고 워낙 좁은 바닥이라 한 다리 건너 사돈이라고, 주민들 거의가 인과관계로 얽혀있고 이해관계로 얽혀있어서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누가 더 많은 혜택을 보았느니 하며 말도 많고 갈등도 많아요. 그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군수가 당장 구설에 휘말리니 어쩌겠소. 무엇보다 정치색깔로 인한 갈등과 증오가 지역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어요,”

이처럼 정치색에 멍드는 민주주의가 안타깝지만 아무리 큰 권력을 쥐었다 해도 남의 혀 까지 지배할 수는 없으니 어쩌겠는가. 남이 헐뜯을수록 수시로 나를 뒤돌아보며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는 것이 헐뜯는 자의 혀로부터 해를 입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지 않겠는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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