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인 성(시인. 스토리텔러)

 

                                   

 


 지난해 가을, 서울의 어느 맹아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 학교에 다니는  사각장애아들을 데리고 교동에 있는 송암 박두성 생가를 답사코자 하는데 안내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강화 나들길 이야기>를 비롯해서 지역의 역사문화를 알리는 스토리 북(Story book)을 서너 권 엮어낸 뒤부터 이처럼 뜬금없는 부탁을 해오는 경우가 잦다. 그러나 아무런 볼 것도 없이 폐허지에 불과한 송암 생가를 안내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그곳엔 송암 선생의 집터만 있을 뿐으로 별로 볼 것이 없으니 인천에 있는 박두성 기념관을 가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자 그쪽에서 하는 말이 이랬다.
 “시각장애아들에게 볼거리를 구경시켜주러 가겠습니까? 맹인들을 위해서 평생을 바치신 송암 선생의 거룩한 냄새를 맡으러 가는 것이지요.”
 아뿔싸! 스토리텔러를 자부하며 여기저기 기행문까지 발표하는 주제에 감성여행도 모른 채 볼거리만 앞세웠다니. 경솔했던 미안함을 앞세우고 약속한 날짜에 송암 생가 터를 들어서자 40여 명 정도 되는 맹아들이 옛 교동교회 건물 에 등을 기댄 채 오종종 앉아 있었다. 그들을 인솔해온 교장선생님도 앞을 볼 수 없는 처지여서 내가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다짜고짜로 “이곳은 우리 같은 장님들의 성지인데 어찌하여 송암선생의 기념관이 여기에 있지 않고 인천에 있느냐?”며 질책부터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는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할뿐더러 된통 원망까지 듣고 보니 기분이 언짢아서 현장상황만 얼버무린 뒤 자리를 뜨려다가 송암의 은덕을 기리는 이은상 시조시인의 추모시가 생각나 읊어주었다. 

 ‘점자판 구멍마다 피땀괴인 임의 정성/어두운 가슴마다 광명을 던지셨소/이 아침 천국에서도 같이 웃으시리다/남의 불행 건지려고 자기 행복 버리신 임/한숨을 돌이켜서 임 마다 노랫소리/그 공덕 잊으리까. 영원한 칭송 받으소서.’

 그런데 또 꼬이고 말았다. 맹아학교 교장선생님이 이 시를 듣고는 당장에 노래를 만들어 학생들이 부를 수 있게 하겠다며 자기가 멜로디를 만들 때까지 한 소절씩 반복해서 읽어달라는 것이다. 어찌하겠는가. 왼 종일을 꼼짝없이 붙잡혀 ‘점자판 구멍마다’를 수없이 반복해서 읊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급조된 노래를 따라 부르는 학생들의 눈이 촉촉이 젖어드는 것을 보면서 거룩한 삶을 살다간 사람의 향기도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이다.

 문학의 고장 또는 고고한 삶의 향기를 찾아가는 감성여행이 보편화 되어있다. 그래서 각 지자체마다 그 지역에서 배출한 문인 또는 알려진 인물을 테마로 하는 문학관이나 기념관 등을 건립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연 평균 1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유치함으로써 이른바 성공한 케이스로 평가받는 곳만 해도 수 십 개나 된다. 한국문학관협회의 통계에 의하면 관광인프라가 잘 갖춰진 김유정 문학촌의 경우 연 평균 32만 이상의 여행객이 몰려든다고 한다. 그 덕분에 인근 마을주민 모두가 소설가 한 사람의 향기만 팔아서 먹고 산다. 
 요즘 정치권의 유행어 가운데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말은 관광마케팅에서도 가장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나 사람의 냄새를 찾아다니는 감성여행자가 늘어나고 있고,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스토리텔링작업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도 스토리텔링의 기회가 주어져 강원랜드에서 조성한 ‘하늘길’과 부산시에서 조성한 ‘이바구길’에 그럴듯한 이야기를 깔아놓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탄광지대였던 강원도 영월에서 태백 정선을 거쳐 삼척에 이르기까지의 기나긴 산맥에 거미줄처럼 널려있는 운탄로(運炭路) 일부를 산악트래킹코스로 개발한 ‘하늘길’은 그 길이가 무려 180km에 달한다. 그 가운데는 빼어난 자연경관을 지닌 코스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여행자가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태백산으로 숨어들었던 일곱 선비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칠현동(七賢洞) 골짜기를 비롯하여 화전민과 탄부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이름 없는 골짜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빼어난 자연경관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냄새가 풍기는 매력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증거일 것이다.
 또한 2014년에 조성된 부산의 ‘이바구길’ 역시 초량동 가파른 언덕빼기 판자촌 골목마다 이야기를 입히자마자 부산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부상했는데, 6.25를 피해 몰려들었던 피난민들의 고달팠던 이바구(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쾌쾌한 삶의 냄새를 되살렸기 때문이다.
 우리 강화도에도 섬 전체에 ‘나들길’이라는 트래킹코스가 깔려있다. 눈길을 돌리는 대로 바다와 산과 들판이 어우러지고 역사문화유산이 즐비한 환상적인 풍광이다. 하지만 찾아오는 여행자는 기대치에 한창 미달이고, 지역주민은 실속도 없이 관광쓰레기만 치운다는 불평이 높다.
 한마디로 냄새가 없기 때문이다. 고려 왕릉은 있으되 고려 역사문화의 숨결은 느낄 수 없고, 이규보 정철 정제두 이건창 같은 출중한 문장들이 살다가 묻혀있으되 그들이 남긴 학문이나 문학의 향기는 맡아볼 수가 없다. 말해 무엇하랴. 무명시인들의 시비도 즐비한 판에 우리 민족문학사에서 최고봉이라는 이규보의 시 한편 새겨 넣은 빗돌조차 강화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을...

 
-필자프로필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 거주
 *미당 서정주 추천으로 시인등단
 *<굿시> 등 8권의 시집 출간
 *<한국의 해학사전> <무속기행> <암자기행> <절집의 건강비결> 등 문화답사집과
 *<강원도 하늘길>. <부산 이바구길>. <강화 나들길>. <강화해변> 등을 소개한 Story Book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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