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성 시인

     
                        
 
 지난해 11월 초에서 중순까지 조강(祖江)변에서 보냈다. 정확히는 연미정에서 부터 경계철책을 따라 승천포. 철산포. 인화석진을 거쳐 교동도로 건너가 호두포. 낙두포. 북진나루를 지나 수정산 기슭 말탄포까지의 여정이었다. 강화도의 사정을 모르는 분들은 가을바다를 순례하는 낭만여행으로 착각할 것이다. 하지만 지명만 포구일 뿐, 1953년 정전협정과 함께 휴전선 철책에 파묻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된 추억의 잔상들이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만 해도 남북의 어민들이 사이좋게 고기를 잡으며 술잔을 부딪치던 평화지대였다. 강화도 사람들이 북녘의 황해도 개풍. 개성. 연백으로 장을 보러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북녘의 어부들도 이들 포구를 통해 교동이나 강화로 건너와 어느 주막거리에서 하룻밤 늘펀하게 마시고 돌아가던 마실길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처럼 남북한의 주민들이 이웃집 드나들 듯 하던 물길이 굳게 닫힌 지 65년 만에 다시 열어 제 낄 채비를 하고 있다. 한강하구를 평화수역으로 설정하고 남북 어민들이 함께 어로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 수역에 대한 수로조사를 실시하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리고 조사 첫날부터 그 조사선의 움직임을 따라 다녔던 것이다.
 필자는 2007년 한 해를 오롯이 강화해안 전역을 답사할 기회가 있었다. 강화군 수산녹지과에서 강화만(江華灣) 일대의 갯벌과 어항(漁港)을 중심으로 영화롭던 시절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는데, 그 집필자로 답사에 나섰던 것이다. 그때 강화군에 속한 30여 개의 유 무인도를 샅샅이 뒤지며 그 섬들이 품고 있던 포구가 자그마치 80여 개나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가 군 경계철책에 덮여 폐쇄되었고, 어로활동이 가능한 남단해안에 남아있는 열댓 개의 포구가 전부다.

 어장이 그만큼 축소되었는데도 답사 길에 동행했던 당시 수산녹지과 문경신 과장은 강화를 글로벌해양관광지로 가꿔갈 꿈을 꾸고 있었다. 필자를 앞세워 강화해협에 대한 홍보책자를 만드는 것도 그 때문이고, 어족자원을 늘리기 위한 치어방류사업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도 그 준비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북한과의 관계가 좋아져서 남북한이 공동으로 어로활동을 하는 날에는 세계인들이 찾아오는 평화해양관광지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요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우선 내국인 관광객이라도 불러들일 수 있는 이슈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해 왔다. 하여 여러 날 궁리 끝에 생각해낸 것이 양사면 철산포를 주제로 한 통일가요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철산포는 신영복 교수가 <철산리의 강과 바다>라는 에세이에서 설명한 대로 개성의 송악산이 보이고, 남쪽 땅을 흘러온 한강과 휴전선 철조망 사이를 흘러온 임진강, 그리고 조국의 북녘 땅을 흘러온 예성강이 만나는 곳이다. 그 세 개의 강물이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이 마치 파란만장한 분단의 역사를 끝내고 하나의 통일된 민족으로 융합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많은 것을 일깨워 주는 곳이다.
 문경신 씨와 나는 그러한 철산포를 노래로 만들기 위해 어느 주말 하루를 그곳 언덕에 턱을 괴고 앉아 가사를 썼다.

 ‘한발자국 건너뛰면 닿을 수 있는/황해도 개성연백 삼천리강토/그리운 북녘 땅이 바로 저긴데/한강물 임진강 예성강물이/천리 길 내달려와 얼싸안는 철산포/우리도 저들처럼 하나 될 수 있다면/이 한 몸 녹아 녹아 물이 되어 흘러라/남과 북이 강물 따라 하나가 되는 강화섬 철산포//꿈에라도 만나볼까 찾아 헤매던/그리운 부모형제 정든 친구여/그 이름 그 얼굴을 눈앞에 두고/너무나 아득한 이별 앞에서/휴전선 철조망도 흐느끼는 철산포/바람도 흰 구름도 노을빛에 물들어/나도 야 그 곳으로 그 곳으로 가리라/남과 북이 강물 따라 하나가 되는 강화섬 철산포’

 이 노랫말에 멜로디를 얹은 다음 성악을 공부하는 강화도 청년에게 녹음을 시켜 음반을 제작할 무렵, 우연찮게도 남북정상회담 소식이 전해졌다. 뒤이어 남북이 공동으로 어업활동을 할 수 있는 평화수역을 설정한다는 판문점선언이 발표되었고, 후속조치로 한강하구의 수로를 조사하기 위한 배가 뜬 것이다. 그때 조사선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나의 눈에는 무려 65년 동안이나 깊이 잠들었던 포구가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스쳐갔다. 나아가 철산포를 옛날 모습으로 복원하고 접경지역의 인접주민들만이라도 왕래할 수 있는 뱃길을 열어 화해교류의 시범지역으로 삼는다면 독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장벽처럼 전 세계인이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더욱이 강화도는 북한이 정통성으로 내세우는 고려의 39년 도읍지가 아니던가. 고려가 천도하여 사직을 보전한 곳도 강화 땅이고, 고려 왕족의 능을 비롯하여 고려의 역사와 문화가 켜켜이 쌓여있는 곳도 강화 땅이다. 저들에게는 남한의 어느 지역보다 친밀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남북평화의 기운이 익어가는 이 때에 그러한 점들을 부각시킨다면 강화도는 남북한 평화교류의 현장으로 또는 화해협력의 거점기지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것이 2019년 강화의 모습이길 바라며, 그 대망의 해에 닻을 올린 ‘인천&뉴스’가 큰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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