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백혈병, 글리벡 출시 이후 10년 생존율 80∼90% 웃돌아
급성백혈병도 표적치료제 4종 FDA 승인…"하루빨리 국내 도입해야"

김희제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 = 예나 지금이나 '백혈병'을 '불치병'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인식은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의료인들조차도 비슷하다. 오래전 소설이나 영화에서 봤던 비운의 백혈병 환자 스토리가 각인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수준에서 '백혈병=불치병' 공식은 옳지 않다.

백혈병은 혈액에 생기는 암이다. 우리 몸의 뼈 중심 부분에 있는 골수는 백혈구·적혈구·혈소판 등의 혈액 세포를 생산하고 성숙시켜 말초혈액으로 공급하는 장소인데, 여기서 백혈구에 이상이 생겨 지나치게 많은 비정상 백혈구 세포가 증식할 때 이를 백혈병이라고 한다.

백혈병성 암세포가 증식하기 시작할 때 초기에 이를 막지 못하면 결국 암세포가 골수를 가득 채우고 말초 혈액을 통해 전신으로 퍼진다. 백혈병 세포가 몸 안의 주요 장기에 침범하면 장기 기능의 이상이나 소실을 가져와 경우에 따라 다른 종양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때 세포의 분화 유형에 따라 골수성의 백혈구 생성조직이 무제한으로 증식하는 '골수성 백혈병'과 림프구성 생성조직이 무제한으로 증식하는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나뉜다. 또 병의 진행 속도에 따라 급성과 만성으로도 분류된다.

 

 백혈병 환자의 골수 세포
백혈병 환자의 골수 세포 [위키피디아 제공]

 

만성골수성백혈병의 경우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잦은 입원치료와 항암주사치료, 동종조혈모세포이식법 등에도 3∼5년 장기 생존율이 불과 30∼40%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1년에 '기적의 신약'으로 불리는 글리벡이 나온 이후 신세계를 맞게 됐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환자들처럼 글리벡을 매일 먹는 것만으로도 10년 이상 생존율이 80∼90%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런 치료 효과는 글리벡이 '필라델피아 염색체' 이상으로 생기는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억제함으로써 가능했다. 특정 암 유전자만 표적으로 삼는 '표적치료제'가 제대로 효과를 낸 셈이다.

하지만 급성백혈병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 질환은 치료 대상이 될 수 있는 백혈병의 암 유전자 '표적'이 불확실하거나 너무 많아서 만성골수성백혈병과 같은 성과는 단기간에 나오기 힘든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따라 급성백혈병은 여전히 반복적인 표준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치료 등이 필수 코스다. 이를 위해서는 환자들 스스로 장기 입원치료의 고통, 경제적 부담, 심각한 항암치료 관련 합병증 등 수년 동안의 치료 과정을 이겨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장기 생존율은 답보 상태다.

국제조혈모세포이식등록소(International Bone Marrow Transplant Registry, IBMTR)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예후가 좋은 급성백혈병 환자들의 경우 3년 생존율이 50∼60% 수준이지만, 예후가 불량한 환자들은 채 아직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는 지난 40여년간 '3+7'이라는 표준 항암치료법이 바뀌지 않은 탓이 크다.

'3+7' 항암치료법은 두 가지의 강력한 세포독성 항암제를 각각 3일과 7일 동안 주사하는 방식이다. 이 치료에 동반하는 항암제의 치명적인 부작용을 잘 견뎌내야만 비로소 1개월 경과 후 약 70%의 환자가 양호한 반응을 얻어 생명 연장을 기대하는 교과서적인 치료방식이다.

문제는 나이가 많은 환자들일수록 이들 병용 항암제의 반복 투여에 따라 발생하는 치명적인 전신 합병증으로 치료 도중에 상당수가 사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1차 결과에서 양호한 반응이 나왔어도 수개월 혹은 수년 내에 다시 백혈병이 재발해 훨씬 많은 환자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도 두려운 현실이다.

그나마 인류가 처음으로 줄기세포를 병 치료에 이용하는 시발점이 된 조혈모세포이식은 급성백혈병 치료 성공률을 많이 높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환자가 재발과 이식 과정에서 심각한 치료 관련 합병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망하고 있어 치료법 개선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요즘과 같은 인구노령화 추세 속에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의 평균 진단 나이가 대략 60대 후반으로 올라간 점도 고민을 더 키우고 있다. 노인 대다수가 80세 이후까지 건강한 삶을 생각하는 상황에서 60∼70대에 발생하는 이런 암과의 싸움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미래 맞춤형 정밀의학이 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해 무려 4종의 '급성골수성백혈병' 표적치료제를 승인했다. 이는 지난 40년 이상 똑같은 항암제를 모든 환자에게 동일하게 투여하던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속칭 '표준치료법'의 대변화를 예고하는 새로운 흐름이다. 급성백혈병도 만성백혈병처럼 정확한 암 표적을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다만, 이들 약제는 아직 국내 임상에서 환자들에게 새로운 표준치료법으로 사용이 가능한 보험등재 약물도 아니고 그 적용 시기조차도 여전히 미지수다.

하지만 국내에도 신속하게 도입돼 치료가 잘 안 되는 백혈병 환자들에게 하루빨리 적용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의료진으로서의 바람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관련 부처의 행정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김희제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 [서울성모병원 제공=연합뉴스]

 

◇ 김희제 교수는 1989년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의 권위자로 1999년 혈액종양내과 분과 전문의, 2009년 중환자의학 전문의를 각각 취득하고 1999~2001년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암센터-조혈&면역학부에서 박사 후 연수를 마쳤다. 여의도성모병원 세포치료센터장, 대한조혈모세포이식학회 학술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대한혈액학회 학술이사 및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분과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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