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편지는 '따뜻한 하루'서 보낸 감동의 사연입니다.

1977년 제 나이는 열다섯.
딸이 귀한 집의 막내딸로 태어나
공주님처럼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 그 시절,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과외까지 받았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시련은 소리 소문 없이 절 찾아오고 있었나 봅니다.

철없는 여중생이었던 전 그만,
과외선생님의 아이를 갖게 되었고,
여중생이었던 저를 곱게 볼 리 없는
어려운 시댁생활을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둘째까지 임신했지만,
남편은 더 이상 제 사람이 아닌 다른 여자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철없이 혁이와 운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습니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제 능력으로
도저히 두 아이를 키울 수 없었습니다.

면목은 없었지만 다시 가족을 찾게 됐고,
새 삶을 살길 원하는 가족은
큰 오빠의 호적에 혁이와 운이를 올려주었습니다.

당시 자립할 능력이 없던 저는
그렇게 자식을 조카로 만나야만 했습니다.
다행히도 혁이와 운이는 내가 고모인줄 알고 자랐고,
엄마처럼 잘 따라주었습니다.

그리고 20년...
내 아들 혁이가 결혼을 합니다.
엄마라고 나설 수도 없는 자격 없는 엄마지만,
마음으로나마 엄마 같은 인생이 아닌
행복한 인생을 살길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루 앞둔 그 날,
혁이에게서 한 통의 메시지가 왔습니다.

"고모, 내일 결혼식장에 예쁘게 하고 오세요.
그리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오늘 꼭 해야 할 거 같아서요.

저 기억하고 있었어요.
사랑해요. 엄마!
이젠 좋은 사람 만나세요.

아빠.. 아니 그 분 같은 사람 만나지 말고요.
엄마를 아끼는 사람 만나 지금이라도 행복을 찾으세요."

20여 년간 참아왔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습니다.
원망하고 증오했던 그였지만,
오늘은 사무치게 그립기도 했습니다.

모를 테지요 그 사람은..
자신의 핏줄이 장가를 가고,
또 한 명의 핏줄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러
군대에 간다는 사실을..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제 저에겐 든든한 두 아들이 다시 생겼으니까요.
지혁아 제발, 한 사람만 사랑하며 예쁘게 살아가거라!
지운아 부디 몸 건강히 다녀오렴.

독자/김미아(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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